나눔의 동산 (21. 8. 23)

나눔의 동산 (21. 8. 23)

동산지기 0 1408

초록이 지친 산골짜기에서 어느새 소슬바람이 내려옵니다... 밤송이는 커가고, 대추는 익어가니 두런두런 가을소리로 문안드립니다.

밤나무로 달려간 정숙씨가 새끼손가락을 쳐들며 애기.. 애기..” 합니다. 덜 자란 밤송이를 알려주는 목소리도 신이 났습니다. 태풍이 뭔지 홍수가 뭔지 알 수 없는 정숙씨는 가을을 살 생각에 행복합니다.

오랜기간 조현병을 앓고 있는 정혜씨가 가을을 타려나봅니다. 홀로 쭈그리고 앉아 화단의 꽃을 보더니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맘이 알고 싶어 이것저것 옛날 일들을... 마음에 사연들을 꺼내어 물었습니다. 좋아했던 아버지와의 추억을 얘기하며 환한 웃음을 웃더니 긴 한숨을 쉽니다. 그리움도 따뜻한 기억도 한숨으로 대신할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추억 몇 개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가 봅니다.

82세임에도 까만 머리를 자랑하는 이수연 할머님은 지적장애가 있지요. 63세의 머리가 아주 하얀 영희씨에게 할머니라며 자꾸 도와주려 하십니다. 안도와 주셔도 된다고 말리면 되레 큰 소리 치시며 어이없어 하시지요. 보이는 대로 생각하고 사는 할머니를 말릴 재간이 없네요...

공책과 연필이 인생의 전부인 제경씨와 요즘 힘겨루기 중입니다. 그냥 빨리 쓰고 새 공책 받고 싶은 욕심에 연필 대신 색연필로, 쓰기 보다는 쭉 긋는 것으로 대충 그린 후 매일 새 공책을 요구하지요. 급기야 오늘은 또박또박 잘 쓰는 윤희씨 공책을 보여주며 이렇게 쓰는거라 했죠. 자기가 최고 공부 잘한다는 자부심이 있던터라 오히려 협박을 합니다. 돌아가신 아버지, 경찰, 언니, 오빠, 말 할 수 있는 모두를 대며 일러버린다네요. 윤희씨처럼 잘 쓰면 하루에 10권씩 준다고 했더니 아직 대답을 안 하고 있습니다. 칸 채우며 쓰기는 싫고... 윤희씨 보다 못하기는 더 싫고... 공책은 갖고 싶고... 나름 똑순이의 결말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카페동산 소식입니다.

개학을 해서 만나니 어찌나 반갑고 좋던지요... 꾸러미를 나눠주느라 만난 학생들과는 눈빛 인사가 다름도 느꼈지요. 방학동안 알바하느라 지쳤지만 대학 등록금 마련한다는 얘기에 칭찬해 주었습니다. 스스로 알아서 살아야 하는 학생들은 늘 어깨가 무거워 보입니다. 비록 컵밥과 컵라면이지만 한끼 식사를 제공한다는 것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지요. 눈치 보지 않고 기분 좋게 가져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함께 해 주시고 도움 주셔서 고맙습니다...

2021823일 나눔의 동산에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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