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온 편지

베트남에서 온 편지

심재민전도사 0 366

“Hear my cry, O God”

내 마음이 약해질 때, 땅 끝에서 주님을 부릅니다.

내 힘으로 오를 수 없는 저 바위 위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시편 61:2)

작년 10월부터 쓰기 시작한 편지를 이제야 띄웁니다. 그러다 보니 편지에 몇 달 동안의 사건과 느낌이 뒤죽박죽 섞여 있습니다. 이해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부부는 현재 한국에서 머물고 있는데, 조용한 안식의 시간을 가지려 동역자 여러분들께 연락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코로나가 심해져서 교회를 찾아가는 일도 자제하고 있습니다. 10년 만에 맞이한 겨울의 추위를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했는데, 감기 걸리지 않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따뜻한 봄날이 오면, 코로나도 좀 잠잠해지고 만남이 자유로워지면, 그때 찾아뵙고 인사도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재충전의 시간..

어느덧 저희 부부가 베트남에서 생활한 지 10년이 되었네요. 요즘은 마치 배터리가 방전된 것처럼 몸도 힘들고 사역에 대한 의욕도 불타오르지 않네요. 그래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며 안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병원에 가서 건강 상태도 체크를 하고, 몸도 추스려야 하고요. 그래서 저와 아내는 안식년을 보내기로 작정하고 1027일에 한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우리가 안식년을 보내기 위해 한국에 간다 하니 마치 영이별을 하는 것처럼 베트남 청년들이 무척 슬퍼하더군요.

제가 청년들에게 가끔 이런 말을 던지곤 했습니다. “나는 10년만 베트남에서 사역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거야.” 이 말을 던졌던 이유는 나는 언젠가는 떠날 이방인이고, 베트남 선교는 베트남 사람들 스스로의 힘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이었죠. 그런데 10년이 되어 안식년으로 간다고 하니 좀 불안했던 모양입니다. 한 달 동안 청년들과 이별 준비를 했습니다. “이번 기회가 우리들에게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우리가 없어도 너희들 스스로의 힘으로 공동체를 세워갈 수 있는 힘이 얼마나 있는 지를 테스트하는 시간이다.”

언제부터인가 맛있는 것을 먹을 때는 베트남 청년들의 얼굴이 먼저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하더군요.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아들과 며느리, , 손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니까 마음의 거리도 멀어지는 것일까요? 10년이란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올해 저와 아내가 회갑인데, 동네 잔치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족들하고 따뜻한 밥이라고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 회갑 생일상은 자식들이 롯데호텔 식당(미술랭 등급을 받은)을 예약했지만 4인 이상 집합금지로 취소되고, 집에서 가족들과 조촐하지만 푸짐하게 식사를 하였습니다. 아내가 갈비찜을 하고, 아들과 며느리가 전을 부치고, 딸이 미역국을 끓여 한 상에 둘러앉으니 참으로 기쁘더군요. 추사 김정희가 오랜 귀향살이를 하고 나서 한 말이라고 하던데요, “최고의 밥상은 가족들과 함께 둘러앉는 것이라고요. 아 참~ 다음 주가 아내 회갑인데, 지난번에 취소된 식당을 자식들이 다시 예약을 했다는군요. 이번에는 한번 갈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큰 바위 앞에 서있는 느낌..

작년 915일 새벽, 청년들과 함께 시편 61편의 말씀을 나누는데, “땅 끝이란 단어에 울컥하였습니다. “내가 지금 서있는 이곳이 바로 땅 끝이구나!”하는 공감이 격하게 일어났습니다. 선교지에 살다보면 종종 땅 끝에 서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베트남에 왔던 첫 해에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었죠. “내 힘으로 오를 수 없는 저 바위라는 표현은 더 공감이 갔습니다. 길은 끊어졌고, 큰 바위가 앞을 가로막고 있고,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그런 상황에서 시인은 하늘을 향해 울부짖습니다. “Hear my cry, O God.” 절박한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주님을 향해 탄식하듯 울부짖는 시인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아마 나도 누군가 앞에 울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날 아침 주님 앞에 울부짖으며 기도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난 5월부터 시작된 코로나 사태는 거의 5달 동안 도시를 마비시켰고, 일상의 삶은 집안에 갇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5월부터 희망선교교회도 줌으로만 예배를 드리고, “위드 카페도 문을 닫고 영업을 못하고, 학사의 청년들도 하나 둘씩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거의 5달 동안을 집밖으로 나가기도 힘들었고, 5분 거리에 있는 우리 공동체도 찾아갈 수 없었죠. 우리 공동체의 청년들의 삶이 더 팍팍했습니다. 대부분이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방에서 지내는데, 일을 나가지도 못하고 고향으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죠. 그때 청년들의 간증에서 자주 듣던 말이 있습니다. “Hết tiền rồi(돈이 다 떨어졌어요).”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데, 주님께 까마귀를 보내듯이 도움의 손길을 베푸셨다며 감사한다는 간증을 하였습니다.

상황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동역자 여러분들에게 기도와 지원을 부탁하였는데, 편지를 받고 여러분들이 선교비를 보내주셨습니다. 동역자 여러분의 기도와 사랑으로 어려운 시간을 잘 견뎌냈습니다. 감사의 인사도 제대로 전하지 못한 점은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후원으로 희망선교교회와 희망학사, 위드 카페가 코로나 위기를 견뎌내며 존재하고 있습니다. 또한 생활이 어려운 친구들에게 지원금도 나눠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기도해주시고 후원해주시는 여러분들 덕분에 희망선교공동체가 어려움 가운데서도 꿋꿋하게 살아내고 있습니다.

2년 전, 우리 공동체는 두 개의 주택을 임대하여 사용하다 하나로 통합해서 이사를 했습니다. 한 건물은 교회와 카페로 또 한 건물은 기숙사로 사용을 했는데, 하나의 건물로 통합시킨 것이죠. 절반의 자립을 위해 임대료를 줄여보자는 계산이었죠. 지금 생각해보니 주님의 한 걸음 앞서서 우리를 인도해주셨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만약에 우리가 계속 두 개의 건물을 임대하여 사용했다면 우리 공동체는 큰 위기를 맞이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작년 한 해를 지내면서 땅 끝에 있다, 큰 바위 앞에 서있다는 느낌에 좌절감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시간을 견뎌내면서 깨달은 것은 주님은 땅 끝에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란 지, 한국에 오다..

작년 8월의 어느 날 기도하는 중에 Lan Chi(란 지)가 대학에서 강의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이 환상을 마음에 담고 한동안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란 지를 한국으로 보내라는 메시지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란 지에게 전화를 했죠. “란 지야! 내가 기도하는 중에 이런 환상을 보았는데 너 한국 가서 공부하고 올래?” “네 좋아요.” 이렇게 해서 급작스럽게 한국 유학을 준비하게 되었고, 마침내 지난 1229일에 란 지는 한국 땅을 밟았고, 지금은 배재대학교 어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3월에는 한국어교육학과에 입학할 예정입니다.

비자 받는데 어려움이 많았어요. 옛날에 우리가 미국 가는 비자 받을 때 설움을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한국행 비자 받는 게 무척 어렵습니다. 하루는 저에게 카톡이 왔는데, 이런 내용이었어요. “목사님.. 내 인생에서 이렇게 낙심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지금 처음이에요.” 전화를 했더니 울더라고요. "주님이 하시는 일이니 너무 걱정하지마라. 네가 주님이 하신 일이라고 믿는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가자." 나중에 란 지에게서 들었는데, 한국에 공부하러 가는 문제를 놓고 혼자 고민을 많이 했더라고요. 한국에 가는 것을 광야로 간다고 생각했더라고요. “지금 베트남에서 생활이 너무 편안하고 좋은데, 가르치는 학생들도 많아서 벌이도 괜찮은데, 이 편안한 생활을 뒤로 하고 광야로 가야 하는 걸까?” “내 나이가 28살인데 낯선 땅 낯선 환경에서 공부를 잘 할 수 있을까?” “당장 어학과정을 위해서도 1,500만원이 필요하고, 대학에 입학하면 학비랑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하지..” 혼자서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했더라고요. 그러나 마음에 이 길이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라고, 주님이 가라고 하신 길이라고 판단했다네요. 간증거리가 무척 많더라고요. 한번 우리 란 지를 초청해서 간증도 듣고 격려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2022년 선교비가 부족하지 않도록 기도해 주세요.

2012, 베트남에 들어온 첫 해에 매달 선교비 후원은 10만원 밖에 없었지요.. 그래도 틈틈이 모아 놓은 돈과 주님의 은혜로 1년을 살아냈습니다. 연말이 되니 내년 생활비가 걱정되었지요. 돈도 떨어져가는데 후원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걱정이 많았죠. 그런데 그해 12월 말에 12개 교회가 모여서 -베트남 선교회를 세우고, 2013년부터 선교회에서 생활비로 150만원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때도 땅 끝에 있다고 느꼈는데, 주님께서 새로운 길로 인도해주셨죠. 그 후로 후원 교회가 하나 둘씩 늘어났고, 현재는 생활비와 사역비로 매달 315만원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후원교회가 보내는 선교비가 약간의 여유는 있었지만, 3년 전부터 후원교회가 하나둘씩 줄어들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매달 들어오는 선교비가 딱 315만원이었습니다. 마이너스 재정이 아니어서 감사하지만, 여유가 하나도 없으니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저희 희망선교공동체를 기억하고 선교비를 보내주시고 기도해주신 교회와 후원자 분들의 큰 사랑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올해에도 계속해서 후원을 해주실 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혹시 새롭게 선교비를 보낼 선교지를 찾는 교회가 있으면 저희 -베트남 선교회를 추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선교사는 늘 빚지고 사는 인생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께 받은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 대신 주님께서 갚아주시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우리 공동체가 든든히 서서 이 땅에서 선교의 사명을 힘써 감당하는 것이 빚을 갚는 길이라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삼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 청년 Grum이 부르는 은혜찬양을 함께 보냅니다. 2022년 한해도 동역자 여러분의 삶에 주님의 은혜가 가득하기를 소망하며,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희망선교공동체와 베트남 선교를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코로나의 위험으로 늘 불안함과 두려움을 안고 살고 있지만, 주님의 도우심을 믿고 바라보며 살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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